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눅2:41-51) 2024.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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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 11:17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부모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12살 된 예수님을 모시고 예루살렘 성전에 갔습니다.
유월절을 잘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머무셨는데, 부모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가다가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모들은, 예수님을 찾으면서 예루살렘으로 46절에 “사흘 후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성전에서 예수님은 당시 유대의 랍비들, 선생들에게 앉아서 듣기도 하시고, 묻기고 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얼마나 잘 묻고 대답을 잘하시는지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겼고 했습니다.
성전에서 예수님을 발견한 마이아와 요셉은,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말을 합니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그런데 예수님은 뜻밖의 대답을 하십니다.
4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오늘 설교의 핵심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이 예수님의 말씀이.....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나? “무슨 일을 하러 오셨나”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을 가리키며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해서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하십니다.
사실 지금 예수님이 12세가 되어서 성인식을 집례 받았습니다.
신앙적인 성인이 되니 육신의 아버지보다 영적인 아버지를 찾는 것입니다.
우리도 영적인 성인이 되어서 영적인 하나님 아버지를 더 찾고 의지하고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어른이 되었으면 예수님처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를 불경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요5:18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감히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을 ‘우리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요8:39에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그런데 어린 예수님이, 49절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성전에 계시면서, 성전을 “내 아버지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 집에 있는 것이 정상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학생은 학교에 있으면서 공부하고 있으면 됩니다. 운동선수는 운동장에서 운동하고 있으면 됩니다.
군인은 군복을 입고 총을 들고 훈련하고 있으면 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요 그 사람의 사명입니다.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정상입니다. 거라사 광인은.... 정신이 나가서.... 집에 안있고 무덤에서.
밥알이 밥그릇에 있을 때는 밥이지만, 밥알이 시궁창에 있으면 오물입니다.
학생도 피시방, 노래방에 갈 수 있죠? 그런데 학생이 학교 갈 시간에 피시방, 노래방???
성도가 오늘 금요심야 기도 시간에 성전에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성도가 주일날은 성전에 계시는 것이 정상..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 구원 받은 크리스챤들은, 내가 머물러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합니다.
가게 주인은 자리를 비우지 않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있어야 할 곳에 앉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러 있는 것은, 집에 가기가 싫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인생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낸 것이고, 그 뜻과 계획을 아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을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요8:29절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예수님은 벌써 12세 때에 예수님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실 지를 아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왜 나를 보내셨을까?를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왜 저와 여러분을 보내셨을까요?
누구 누구의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누구 누구의 아내가 되고 남편이 되기 위해서....
강화에서 농사짓기 위해서..... 또는, 아무개 옆집에서 같이 재미있게 살게 하기 위해서....
거기까지만 알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이 세상에 보내셨는가는 육적이고 세상적인 것만 아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셔서 교인이 되게 하시고, 목회자 장로 권사 집사 인도자 속장 찬양대를 하게 하기 위해서 보내셨구요.
각종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 기도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우리를 보내셨다는 것을 기억하시는 밤이 되셨으면..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오늘도 집에 계시지 않고, 이 밤에 이 성전에 계심이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 농사짓고 수고했는데, 무슨 밤에 교회 가서 앉아 있어? 이것은 마리아의 어리석은 말입니다.
예수님은 뭐라고 대답하실까요?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성전에 있어야 할 줄 알지 못하셨나이까?’
그러면 우리도... 목사인 내가... 장로 권사 집사인 내가...
금요일 날에는 금요심야기도회에 하나님 성전에 나가있는 것 당연한 것 아니오?
성도가 주일이면 성전에 나가서 예배드리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오? 주일날 왜 나를 집에서 찾아요?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주일이면 성전에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도가 새벽에 기도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육적이고 세상적인 일도 바쁘게 잘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왜 나를 성도로 불러 구원받게 하셨을까?를 늘 생각하시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도 우선하고 소홀히 여기는 일이 없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 신앙이 되셨으면 하고 이 말씀을 드립니다. 어떠세요? 아멘이십니까? 아멘입니다.
유월절을 잘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머무셨는데, 부모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가다가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모들은, 예수님을 찾으면서 예루살렘으로 46절에 “사흘 후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성전에서 예수님은 당시 유대의 랍비들, 선생들에게 앉아서 듣기도 하시고, 묻기고 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얼마나 잘 묻고 대답을 잘하시는지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겼고 했습니다.
성전에서 예수님을 발견한 마이아와 요셉은,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말을 합니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그런데 예수님은 뜻밖의 대답을 하십니다.
4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오늘 설교의 핵심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이 예수님의 말씀이.....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나? “무슨 일을 하러 오셨나”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을 가리키며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해서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하십니다.
사실 지금 예수님이 12세가 되어서 성인식을 집례 받았습니다.
신앙적인 성인이 되니 육신의 아버지보다 영적인 아버지를 찾는 것입니다.
우리도 영적인 성인이 되어서 영적인 하나님 아버지를 더 찾고 의지하고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어른이 되었으면 예수님처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를 불경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요5:18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감히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을 ‘우리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요8:39에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그런데 어린 예수님이, 49절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성전에 계시면서, 성전을 “내 아버지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 집에 있는 것이 정상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학생은 학교에 있으면서 공부하고 있으면 됩니다. 운동선수는 운동장에서 운동하고 있으면 됩니다.
군인은 군복을 입고 총을 들고 훈련하고 있으면 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요 그 사람의 사명입니다.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정상입니다. 거라사 광인은.... 정신이 나가서.... 집에 안있고 무덤에서.
밥알이 밥그릇에 있을 때는 밥이지만, 밥알이 시궁창에 있으면 오물입니다.
학생도 피시방, 노래방에 갈 수 있죠? 그런데 학생이 학교 갈 시간에 피시방, 노래방???
성도가 오늘 금요심야 기도 시간에 성전에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성도가 주일날은 성전에 계시는 것이 정상..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 구원 받은 크리스챤들은, 내가 머물러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합니다.
가게 주인은 자리를 비우지 않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있어야 할 곳에 앉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러 있는 것은, 집에 가기가 싫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인생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낸 것이고, 그 뜻과 계획을 아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을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요8:29절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예수님은 벌써 12세 때에 예수님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실 지를 아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왜 나를 보내셨을까?를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왜 저와 여러분을 보내셨을까요?
누구 누구의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누구 누구의 아내가 되고 남편이 되기 위해서....
강화에서 농사짓기 위해서..... 또는, 아무개 옆집에서 같이 재미있게 살게 하기 위해서....
거기까지만 알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이 세상에 보내셨는가는 육적이고 세상적인 것만 아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셔서 교인이 되게 하시고, 목회자 장로 권사 집사 인도자 속장 찬양대를 하게 하기 위해서 보내셨구요.
각종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 기도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우리를 보내셨다는 것을 기억하시는 밤이 되셨으면..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오늘도 집에 계시지 않고, 이 밤에 이 성전에 계심이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 농사짓고 수고했는데, 무슨 밤에 교회 가서 앉아 있어? 이것은 마리아의 어리석은 말입니다.
예수님은 뭐라고 대답하실까요?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성전에 있어야 할 줄 알지 못하셨나이까?’
그러면 우리도... 목사인 내가... 장로 권사 집사인 내가...
금요일 날에는 금요심야기도회에 하나님 성전에 나가있는 것 당연한 것 아니오?
성도가 주일이면 성전에 나가서 예배드리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오? 주일날 왜 나를 집에서 찾아요?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주일이면 성전에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도가 새벽에 기도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육적이고 세상적인 일도 바쁘게 잘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왜 나를 성도로 불러 구원받게 하셨을까?를 늘 생각하시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도 우선하고 소홀히 여기는 일이 없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 신앙이 되셨으면 하고 이 말씀을 드립니다. 어떠세요? 아멘이십니까? 아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