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요17:1-3) ............. 2019. 9. 8. 주일낮예배
요14장부터 16장까지는 예수님의 설교입니다. 그리고 17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17장을 ‘예수님의 기도’라고 합니다. 성도들을 향한 마지막 기도이십니다. 마지막 부탁입니다.
마지막이라고 하면 좀 다른 때와는 다르죠?
14-16장의 예수님의 고별설교를 말씀하시면서, 결론 부분에 33절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선언
우리도 이기었노라 선언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17:1-5 자신을 기도하심 1절,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실 때의 기도에서도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요11:41에서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요한 17장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면서 “아버지”라고 부르신 것이 20번이나 나옵니다.
“아버지”, 히)aba;(아바:אב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에 첫 번 째는 기도는 뭘까요? 4절..
“내게 하라고 주신 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이 있어서”입니다.
내게 하라고 주신 일? -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일입니다”
내게 하라고 주신 일? - “대한민국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일입니다”
내게 하라고 주신 일? - “내리교회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일입니다”
속죄제사의 ‘속죄의 어린양’이 되시고, ‘화목제물’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천국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고난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입니다.
온 몸이 찢기시고 손과 발에 못이 박혀 피를 흘리시는 길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서 순종하셔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 같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왜 보내셨을까요? 우리도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이 있어서입니다.
가정을 위한 사명, 교회를 위한 사명, 사회를 위한 사명이 있으셔서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그 사명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과 상급과 면류관을 받는 것입니다.
예)우리가 농사짓는 농작물이 잘 자라면, 우리들에게 기쁨이요, 보람인 것과 같습니다.
고구마 밭에 고구마가 고추 밭에 고추가 잘 자라서 고구마는 고구마의 역할을 잘하고 고추는 고추의 역할을 잘해서 잘 익고 잘 팔리면 얼마나 그것들 때문에 여러분이 기쁘세요?
그러나 그 반대이면 얼마나 속이 상하세요????
예)여러분 자녀들이 잘 자라 가는 모습이 얼마나 흐뭇하시고 보람이 있으세요?
그러나 자녀들도 기대와 달리 답답한 일만 생기면 얼마나 속이 상하세요?
우리가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이 이 땅에 이 교회에 보내신 사명을 감당하지 않을 때는 얼마나 안타까우시겠어요?
사43:7절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우리를 위하여 첫 번째 기도하신 내용이 우리의 사명에 관한 것입니다.
주님이 사명을 주셔서 이 세상에 보내신 일을 우리가 예수님처럼 죽도록 충성하면서 잘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십자가의 길이고 고난의 길일지라도 잘 감당하시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도 영광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 위주로 생각을 합니다. 굉장히 이기주의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죽기까지 복종-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고 무릎을 꿇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왜 그러면 하나님께서 오히려 높이시고 무릎 꿇게 하시고....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에 두번째는 뭘까요? “그들을 보전하사”입니다.
11절 하반절, 12절 중간에, 15절 전체 3번이나 나옵니다.
우리를 이 죄악 세상에서 데려가시지 않으시고, 우리를 ‘보전 하신다’는 것입니다.
‘보존’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보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보존하다’: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보호하고 간직’한다. 문화재..
‘보전하다’: 잘못된 것이나, 어그러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온전한 상태로 되돌려 보호 한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보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잘못된 것’, ‘어그러진 것’을, 온전한 상태로, ‘되돌려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우리를 보전해 달라고 하시는 마지막의 기도가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셔서 주님 만나는 그날까지 온전히 보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넘어지면 일어나게 하시고, 병이 나면 고쳐주시고, 어려울 때 힘주시고....
이것이 보전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보호하다, 지키다, 굳게 붙잡다”
무엇으로 우리를 보전하실까요? 말씀으로.. 기도로.. 예배를 통해서.. 우리를 보전해주십니다.
그래서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17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aJgiavzw(하기아조)
“거룩하게 하다, 깨끗하게 하다, 성별하다”-진리 안에서 온전히 보존되어 살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말씀’의 울타리를 치시고, ‘기도’로 울타리를 치시고, ‘성령’으로 울타리를 치시고.. 보전하십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에 세번째는 뭘까요? “그들도 하나되게 하옵소서”입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7장 전체의 기도 중에, 네 번씩이나 “하나 되게” 기도하셨습니다.
17: 11절, 21절, 22절, 23절.
11절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와 같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나이신 것 같이.... 하나 되기를 기도..
‘교회가 하나가 되는데, 삼위일체 되신 것처럼’ ‘하나가 되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목회자와 성도’가... ‘장로님들끼리...’ ‘기관과 속회’가.... 억지로가 아닙니다.
정말 가족처럼... 정말 부부같아요... 거부감이 없어요... 우리 식구같아요...
가정이 하나가 되라고 하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처럼 하나가 되게 하소서
어떻게 하면 하나가 될까요?
예수 안에서, 말씀 안에서, 내가 “죽으면” 하나가 됩니다. “부셔지면” 하나가 됩니다.
‘송편’- 밀이나, 쌀이 ‘부서져야’ 고운 가루가 됩니다.
성경에는 “고운 가루 에바”라고 하죠? ‘부서져야’ 하나가 됩니다.
‘죽어야’ 되고, ‘부서져야’ 하나가 안됩니다. 죽어야 합니다.
춘천 고향에 부부 60 되신 분들.. 매일 싸우는 소리 동네가 떠나가도록...
어느 날 집에 가니까 앞집이 조용...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데요.. 육이 죽으면 하나가 됩니다.
죽으면, 부셔지면 하나가 됩니다. 하나가 안 된다는 것은, 육이 죽지 않아서 부서지지 않아서...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고 어떻게 하면 내가 부서지나요?
예수님을 사랑하면, 내가 죽을 수 있고, 내가 부서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내가 죽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내가 부서져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내가 온전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요일4:12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사실 내가 완전해 지는 것은 내가 죽을 때, 내가 부서질 때, 그럴 때 내가 완전해 지는 것입니다. 23절-
사실 주님은 제자들이 하나가 안되는 것을 아셨습니다.
제자들 12명이 다투고, 서로 ‘먼저’라고 하고, ‘누가 크냐’ 하고, 하던 것을 주님이 아셨습니다.
초대교회도 하나 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행15장에
아주 참 훌륭한 목회자였던, ‘바울과 바나바’가 다툰 사건이 나옵니다.
그리고 바울이 마지막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하면서 나중에 용서하고 화해하죠?
사실, 초대교회, 고린도 교회도 ‘파’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파, 게바 파, 바울 파, 아볼로 파.. 그런데 성경에는 뭐라고 기록되나요?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누가 심었냐?’ ‘누가 물줬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해서 그들이 하나가 되어서 기도할 때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행2:1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기도의 자리에 하나가 되면, 거기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배의 자리에 하나가 되면, 거기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봉사의 자리에 함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날마다 부흥을 하는 것은, 먼저 온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부흥하고 성도들 가정에는 축복이 결실되고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흥하는 교회에, 기적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가 된다는 것은, 성령께서 찾아오시는 증거입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것은 우리 안에 마귀가 찾아오는 증거인 것입니다.
엡4:2-3절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23절-
하나가 되어야 ‘온전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teteleiwmevnoi(테텔레이오메노이)
온전한 교회는 어떤 교회? 하나 되는 교회입니다.
온전한 가정은 어떤 가정? 하나 되는 가정입니다.
온전한 부부는 어떤 부부? 하나 되는 부부입니다.
다시한번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 정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