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에 돌아볼 우리의 신앙(마26:57-75) .................................................................................................. 2018. 2. 18. 주일낮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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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에 돌아볼 우리의 신앙(마26:57-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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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재의 수요일서부터 고난주간까지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의 기간

성도들은 이 기간 동안에 그리스도의 삶, 십자가의 고난, 부활 등을 묵상, 근신, 회개하는 전통

금년에는 재의 수요일이라고 지난 주부터 41일까지를 말합니다.

)Lent )렌즈........ ‘봄을 상징하며 생명의 약동하는 시기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보라색..

 

오늘 베드로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 하고, 우리 신앙을 건강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순절이 되기를 원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불릴 정도로, 제자 중에 제자입니다.

베드로는 언제나 자신이 있어서, 항상 먼저 말하고, 제자들보다 먼저 예수님께 바다로 뛰어 들고, 예수님과 늘 같이 있었고 하였던 베드로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 천국열쇠

베드로-예수님 때문에, 수제자.. 기적체험, 예수님 때문에 3년 정도는 모든 영광도 누렸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베드로는 형편없는 모습으로우리에게 발견되었습니다.

베드로가 부인하는 모습이 69... 1.‘부인’- 2.‘맹세’ - 3.‘저주하며 맹세합니다.

이것은 이렇게 우리가 이해 할 수 있습니다.

1. ‘아니 나 아냐, 나 예수 몰라

2. ‘나 정말 몰라, 내가 예수를 알며 사람이 아니다,’

3. ‘나 정말 모른다니까, 내가 그 자식을 알며 나 벼락 맞아 죽어도 좋다

이렇게 까지 베드로는 부인, 맹세, 저주합니다.

 

여러분 베드로는 기적을 본 사람입니다. 예수님처럼 물 위도 잠시 걸었습니다. 52, 변화산

그런데 우리는 베드로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비겁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드시죠?

이것이 어거스틴이 말한 인간의 전적인 타락의 모습입니다.

 

우리들도 오래 주님을 믿었고, 주님을 알았고, 예수님 때문에 우리 직분도 있고 그 직분 때문에 인사도 받았고 영광도 누렸고 하였는데 지금 우리의 모습에는 혹시 베드로 같은 면은 없었을까요?

 

베드로는 왜 오늘같이 형편없는 모습이 되었을까요? 이것이 예수 떠난 인간의 모습입니다.

사람은 예수 떠나면 안됩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니까 완전 거지가 됩니다...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완전타락입니다.

아버지의 둘째 아들이 탕자 돼지가 먹는 것도 못 얻어먹는... 아버지가 돌봐주지 않으면 안되는 아들이 된 것 완전타락’, 완전히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왜 이같은 사람이 되었을까요? 3가지입니다.

1)베드로는 멀찍이예수님을 쫓아갔습니다. 58

멀찍이’- ‘아포마크로덴’, 이 말의 의미는 보일락 말락한 먼 거리에 있는 상태를 뜻.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안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믿은 것도 아니고 안믿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는 것입닏.

차던지 더웁던지하라.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열정은 에너지입니다.’

하는 둥 마는 둥 하면더욱 힘이 듭니다.

주께 붙어 있으라...’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능력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분이 주시는 능력으로 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내 능력 내 힘으로 하다보면 넘어집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그런데 멀찍이 쫓아갔습니다.

멀찍이 쫓아가면 베드로같이 예수님 설교를 들은 사람도 이렇게 비참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표적을 기적을 본 사람도 이렇게 비참하게 됩니다

멀찍이 쫓아가지 말고, 앞장서서 주의 일 감당하는 우리들 됩시다

우리교회도 강화 남지방을 이끌어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베드로는 예수님의 결말을 보려고주님의 뒤를 멀리 따라간 것입니다. 58

베드로가 주님을 뒤쫓아 간 것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어떻게 되나 보자

결말을 보고 믿으려는 믿음은 주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니까 베드로가 형편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글쎄 구경꾼으로 따라갑니다. 이것은 방관자입니다.

우리는 주인공이 되어야합니다.

12해 혈루증 걸린 여인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 구경꾼들이 있었나요? 군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혈루증 걸린 여인은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8: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5:29 혈루의 근원이 곧 마르매

혈루증 걸린 여인이었지만 예수님 옷자락 붙잡으니까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주인공도 되고 병도 낫고 얼마나 축복이에요 예수님 가까이 주께로 가까이 좀 더 가까이...

 

교회 가는 것은 좋은데... 푹 빠지지는 말라고 하는 남편

교회는 푹 빠져야 기적을 체험하고 축복을 받습니다. 베드로처럼 멀찍이 결국을 보려고 방관자no

 

3) 베드로는 하속들과 함께 바깥뜰에 앉아 있었습니다(58, 69)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었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대제사장의 하속들이 있는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바깥뜰은 예수님이 서 계신 자리가 아닙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가 받으실 고난의 동참자로서가 아니라 방관자, 참관자로서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시편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올 한해를 살아가면서 우리 여생을 살아가면서 바깥뜰에 앉아있지 말고 주님 곁에서 주님 안에서....예배의 자리에.. 경배의 자리에.. 기도의 자리에.. 봉사의 자리에..

 

이렇게 J 배반, 저주, 맹세하는 베드로를 보실 때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아마 예수님께서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도 주님을 멀찍이 따라가고, 어떻게 되나 보자하는 방관하는 자세를 가지고 살지는 않았는지요?

그리고 가끔씩 가끔씩 예수님의 사랑을 부인하고, 멀리하고, 못들은 척하고, 마치 예수님이 나와는 관계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갈 때는 없었는지요?

우리의 신앙생활가운데 때로 부족한 것도 많습니다. 혹 우리들이 부인했던 일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모른다고 할 때 주님은 얼마나 슬프셨을까요? 그래도 주님은 용서하십니다.

 

어느 집에 불이 났어요, 사람들은 다 나왔는데 그 집 딸 아이가 불 난 집안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온 집안에 불이 붙어서 아기를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용기를 내서, 불 난 집 안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굴까요? 엄마입니다

 

그리고 엄마가 불속에서 딸을 안고 나오는데 마침 위에서 떨어지는 불덩어리가 딸 아이 얼굴에 떨어지는 것을, 엄마가 얼굴로 막다가 얼굴에 아주 큰 화상을 입었습니다.

엄마는 치료는 받았지만, 얼굴에는 너무 흉측하게 많이 일그러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덧 딸아이가 자랐습니다. 그런데 딸아이는 커갈수록 자기 엄마가 창피해졌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학교에 엄마를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 아이가 도시락을 안가져 간거예요.

엄마는 어떻게 할까 망설였습니다 도시락을 가져가면 딸아이가 자기를 보면 창피하다고 할거고도시락을 안 가져다 주면 딸아이가 점심을 굶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얼굴을 보자기로 감싸서 안보이게 하고, 학교로 달려갔습니다.

교문에서 딸을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딸이 왠일인가 하고 친구들과 달려 나왔습니다.

딸을 보자 엄마는 반가운 마음에 얼굴에 보자기가 벗어지는줄도 모르고 딸에게 달려가다가 일글어진 얼굴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보이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딸 아이는, 도시락을 가져온 엄마가 고맙기 보다 일그러진 얼굴을 친구들에게 보인 엄마가 더 보기 싫어서,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그래서 한다는 말이 이까짓 도시락 누가 가져달라고 했어?”

아이들이 물었어요. “저 사람 누구니?” 딸이 대답해습니다.

별거 아냐, 우리 집 앞에 사는 거지야하고 엄마를 보지도 않고, 교실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딸이 집에를 와서 동네 사람 다 듣게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엄마가 창피해서 학교에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온거야, 나 이제 창피해서 학교 어떻게 다녀

그러면서 딸이 밖으로 막 뛰쳐나갔습니다.

바깥에서 이 소리를 다 듣고 있던 옆집 아주머니가 뛰어가는 이 딸을 붙잡고 말했습니다.

엄마의 얼굴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바로 너네 집에 불이 났을 때 너를 구하러 들어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엄마가 주저없이 들어가서 너를 안고 나올 때 천장에서 떨어지는 불덩어리를 네 엄마의 얼굴로 막아서 네가 당할 화상을, 네 엄마가 대신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던 딸이 그제서 놀라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대문 안에서 엄마가 같이 듣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엄마의 입술에서 나오는 작은 소리가 뭐예요?

얘야 그래 너는 나에게 그런 소중한 존재다 너 대신 내얼굴이 이렇게 되어서 나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하면서 엄마도 눈물을 흘리는거예요...

엄마를 창피해하고 엄마를 미워하고 멸시하던 딸을 엄마가 다 용서하고 그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번 사순절, 우리도 주님 앞에서 이런 면은 없었는지요.

베드로처럼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하진 않았는지요. 그것을 뒤돌아보고 점검하면서 우리를 다시 세워가는 절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무엇으로도 주님과 가까워질까요? 오늘 베드로는 어떻게 회개하게 되었지요? 75절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가롯유다와 베드로가 다른 점은 모두 예수님을 팔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 맹세...

가롯유다에게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말씀은 사람을 살립니다. 말씀은 성도를 변화시킵니다.

 

말씀의 씨앗은 기적처럼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말씀이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포도주

에스겔 골짜기에는 마른 뼈들로 가득했지만 말씀을 대언할 때, 뼈가 들어맞고, 힘줄, 살이 덮이고, 가죽이 덮이고, 생기가 들어가니 큰 군사가 되었더라” “마른 뼈가 큰 군사

 

여러분 옥토에 말씀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말씀이 우리를 바르게 인도하십니다.

 

다윗이 회개 당신이 그 사람입니다. 하는 나단 선지자의 말씀이 살렸습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 신앙을 바로 세우고 지키고 승리케 하는 능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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