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마10:46-52) ..........................................…
자 오늘,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가셨습니다.
46절 새) “그들은 여리고에 갔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큰 무리와 함께 여리고를 떠나실 때에...”
자 이 본문을 주목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가셨다가 왜? 아무 일도 없이 그냥 여리고를 떠나십니까?
이거 아니 잖나요? 예수님께서 뭐가 한가하셔서 여리고를 들어갔다가 왜 도로 나오시나요?
저는 이 46절을 묵상하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여리고성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하며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를 좀 불쌍히 여겨 주소서”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러분!!! ‘나사렛 예수’와 ‘다윗의 자손 예수’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곳이 ‘나사렛’이라는 동네입니다.. 아주 촌동네였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자손 예수” 라는 말은, 당시 로마의 통치하에, 가이사 황제에 대한 반역입니다. 메시야 구원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이스라엘을 구원해 줄 메시야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을 했습니다.
너희에게 ‘메시야’ ‘구원자’가 오실텐데, 그가 오시면 ‘이런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사35:5-6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메시야가 오실텐데.... 그 메시야가 오시면,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이 약속의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아.... 메시야가 오시면,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라고 했어” 그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군중들은 단지 ‘나사렛 예수’만을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것은 ‘예수님을 육적’으로만 보는 것입니다.
군중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믿고, 백날 예수님을 따라다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여리고성에 들어가셨다가, 그냥 나오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습니다.
‘나사렛 예수’로, 예수님을 육적으로 믿으면 우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로 여러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모든 신앙생활이 육적으로만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 동네에 가셨을 때 어떤 일이 있었죠?
눅4:16-30절 보시기 바랍니다.
22절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8절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29절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이것이 나사렛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모든 것을 ‘영적으로’ 들려야 하고, ‘영적으로’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육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요셉의 아들 아냐?” “설교를 듣고 다 화가 크게 났습니다.”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서..”
예수님을 이렇게 대우하니 무슨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여러분!! 영적인 혜안(慧眼)이 있어야 합니다.
맹인거지 바디매오는 거지고 맹인이지만 예수님을 보는 영적인 혜안이 열렸습니다.
우리 내리교회도 이런 영적인 눈이 열리시기를 간곡히 축원합니다.
죄송하지만 목사가 누굽니까, 설교 뭡니까? 주일이 뭡니까? 예배가 뭡니까? 장로님들이 누구십니까? 찬양대의 찬양이 뭡니까? 나의 직분이 뭡니까? 헌금이 뭡니까? 속회가 뭐고 심방이 뭡니까?
영적으로 보이고 영적으로 들리고 영적으로 감당을 해야 기적이 있습니다.
예수님 여리고에 들어가셨다가 그냥 나오는 도시처럼, 여러분! 그냥 오셨다가 그냥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감동하시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주님의 관심을 받으시고...
이것이 참된 예배 아닙니까?
그러러면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 예수’시고, 지금도 살아계신 능력의 주님임을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늘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죄송하지만, 목사가 누굽니까, 설교 뭡니까? 주일이 뭡니까? 예배가 뭡니까? 장로님들이 누구십니까? 찬양대의 찬양이 뭡니까? 나의 직분이 뭡니까? 헌금이 뭡니까? 속회가 뭐고 심방이 뭡니까?
세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육적인 것으로만 보면, 신앙생활 안하는거와 뭐가 다릅니까?
예수님이 아무 일도 안하시고 여리고에 들어오셨다가 나가시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안들어 오신 것과 지금 뭐가 다릅니까?
그러나 비록 바디매오 맹인이었지만 그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바디매오는 아마 늘 생각했었나봅니다.
“다윗의 자손 메시야가 오시면, 메시야만 오시면,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야,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야”
그러자 예수님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님도 안하시는 일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도 안해주십니다.
여러분 목사가 어떻게 해준다고 생각하지 마십니다.
여러분이 믿음이 없다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 없는 여리고성 전체의 사람들이라도, 믿음이 없으니까 아무 일도 안 일어났잖아요?
나사렛 예수로 아무리 믿으면 뭐해요?
목사가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믿음을 가지세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세요
약속의 말씀을 확실히 믿는 믿음을 가지세요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비록 거지고 맹인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확실히 믿는 믿음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하고 외친 것입니다.
사실 이런 외침은 큰 일 날 소리입니다.
가이사(씨저) 로마에게 반역하는 말입니다. 자기 신변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소리입니다.
여러분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믿고 기도하시고, 그렇게 살아가시기 축원합니다.
46절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맹인 거지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단지 ‘디매오’의 ‘아들’이기에 ‘바디매오’라 했습니다.
“바”=아들, “디매오”= ‘타메’라는 말에서 유래된 ‘불결’ ‘맹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불결한 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바디매오”의 아버지 역시 아마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옛날에 그런 말 하잖요? ‘약국집 아들’ ‘교장 선생 딸’ ‘군수 아들...’ ‘벙어리 딸’...
아마 ‘디매오’는 역시 뭔가 ‘불결한’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고 그런 가정이었던 같습니다.
거기에 자녀가 있는데, 그 사람 바로 이 맹인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바디메오라고 한듯합니다.
그래서 ‘바디매오’는 이름도 없이 이름도 부를일 없는, 저 길가에 앉아있는 ‘거지 맹인’이었습니다
얼마나 천하고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가요?
맹인이죠... 거지이죠....
그런데 이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만나서 온전해 지고, 구걸이나 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대통령 옆에 있는 사람도 영광인데, 예수님 곁에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얼마나 축복이예요
길가에 앉았던 사람입니다. 왜? 길가에? 사람들 지나가는 길에 거추장스러우니까...
얼마나 불쌍한 사람이예요?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온전한 사람이 되었어요?
신분이 상승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우리나라도 신분상승...
누구 때문에? 다윗의 자손 예수 때문에 신분이 상승되기를 축원합니다.
그 다윗의 자손 예수는 살아계십니다. 여러분이 영접하시면 오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의 ‘목자’시요,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 잘 섬기세요. 잘 믿으세요..
자 그런데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고백한 것이 잘 예수님께 잘 전달이 되나요?
48절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당시는 로마의 식민지 나라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 메시야를 부르면 안됩니다.
옛날에 우리나라도 긴급조치 위반이 있었습니다. 언제 끌려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그러니까 군중들이 ‘잠잠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어떻게 했죠? “더욱 크게 소리 질러”
환란과 핍박이 올 때는, 더욱 크게 소리 지르는 것입니다. 더 열심히, 더 가까이 더 자주 자주..
그때 주님이 머물러 서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부르라”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환란이 오고 핍박이 오면 잠시 쉬는 것이 아닙니다. 환란은 주님이 테스트 하시는 것입니다.
낙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크게 소리 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부르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부르시니까 조용히 하라고 하던 사람들이 뭐라고 하죠?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cheer up 치어럽 “힘 내”
주님이 부르니까 핍박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격려를 합니다... “힘내”
“겉옷을 버리고..”
겉옷은 거지에게 참 유용한 물건입니다. 단벌신사 이불 방석 바람막이 생활청산입니다
버렸지만 손해가 아닙니다.
거지가 깡통 버린다고 손해인가요? 이제 하나님 자녀가 됐는데요..천국 백성이 됐는데요
오늘도 나온 이 시간 손해 아닙니다. 오늘 드리시는 예물 손해가 아닙니다.
더 좋은 것을 주님은 채워주십니다.
주님 앞에 가니 주님이 물으십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하나이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
이런 바디매오의 믿음이 여러분의 믿음이 되시면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