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이 잘됩니다(삼하23:1-7)
요즘 사회 인심이 그렇다죠?
‘불이 나서 119가 와서 유리창 깨고, 현관문을 깨고 들어와 불 꺼주고 살려주니까, 유리창, 현관문 부서진 것 변상하라고 한다죠?’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주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속담에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
자! 여러분! 제가 다윗 설교 많이 하지만요, 다윗은 항상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바실레아가 압살롬에게 도망가던 다윗을 도와주자 그 아들을 죽으면서까지 유언으로 부탁....
다윗처럼,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이 잘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마지막 말’, 유언입니다.
사람의 마지막 말은, 참 의미 있고, 진실하고, 무게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마지막 말’에 자신을 가리켜서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라고 했습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다윗의 아버지지만, 사실 사람들이 이새를 잘 알지 못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아버지?’ ‘이명박 대통령, 아버지?’ 모르듯이 말입니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사람들이 잘 알 수 없는 사람인데도, 다윗은 자기를 말할 때,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아버지를 높이고, 아버지를 귀히 여겼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의 아버지 이새가, 다윗에게 아주 많이 위해주고, 대우해줬나요?
야곱처럼,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귀하게 여겨주고, 다른 형제들보다 뭐 아주 특별하게, 사랑해 주었나요? 그렇게 대우해 주었던가요? 아니지요?
삼상1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 이어서, 왕이 될 사람을 세우도록, 사무엘을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보내셨습니다. 사무엘은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하는 중요한 자리에, ‘아버지 이새’와 ‘아들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중요한 제사 자리에 못 오고, 들에서 형들의 양을 치고 있습니다.
아마 아버지가 그랬겠죠 형들 양 치고 있으라고요...
그런데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아들들을 ‘장남서부터 주욱 보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아들이 그 아들 중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 선지자가, ‘아버지 이새’에게 묻습니다. “다른 아들이 또 없냐?”고 하자, 그때서야 말하기를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삼상16:11)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보세요, 막내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가 오는, 그 중요한 제사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가족으로부터 ‘잊혀지고’, 소외당한 ‘막내 아들’이었습니다.
여기서 다윗을, ‘막내’라고 한 것은 히)‘학카톤’, ‘나이’를 뜻’하기도 하고, ‘등급’을 뜻합니다.
“가장 늦게 태어난 ‘아이’(막내), ‘제일 변변치 못한 놈, ‘꼴찌’........‘끝물’이라는 뜻.
막내 = 꼴찌 = 끝물.... 고추 끝물이죠? 끝물이 좋아요? 안좋죠?
이새는 “아들이 또 없냐?”는 사무엘 선지자의 말에 “에이 막내하나가 또 있는데, 여기에 오기에는 좀 그런 애라 그냥 양이나 지키고 있게 했습니다” 이렇게 한 것입니다.
다윗은 한마디로 ‘아버지 이새’에게, 천대 받는 ‘막내아들’였습니다.
죄송하지만 옛날에 ‘딸’들이 그랬죠?
아들만 공부시키고, 아들에게만 유산 물려주고, 딸들은 출가 외인이라고.. 서러웠죠...
다윗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 뒷전에, 종들이나 할 일들을, 막내, ‘학카톤’, 다윗이,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저 밖에서 ‘양이나 돌보고’ ‘가족으로부터 잊혀지고’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아들이었습니다.
다윗은 아버지에게 이런 취급을 받았습니다. 형제들에게도 이런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아버지가 뭐가 그렇게 귀하다고, ‘이새의 아들, 다윗’이라고 할까요?
여러분! 마치 문재인 대통령이 자기를 소개할 때, ‘000의 아들 문재인’, ‘000의 아들 이명박’
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어색하겠어요?
그런데도 오늘 본문에는 다윗의 마지막 말에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라고 합니다.
다윗이 왜 그럴까요?
다윗은 그래도 자기를 낳아주셨다는 한 가지가 감사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특별히 귀하게 여겨주지 않았어도, 그러니까 형제들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막내 아들이지만 아버지가 나를 낳아주셨어....... 이 한가지만으로 평생을 죽을 때까지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오죽하면 다윗이 지은 시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 하시리이다”
시22: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이것이 다윗의 고백입니다.
다윗은 그런데요
삼상22:1-2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은 황급히 도망하는 중에도, 형제와 아버지가 같이 아둘람 굴에 같이 모십니다.
이렇게 하기 쉬울까요?
도망가는,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부모형제를 모십니다.
다윗은 한 가지만으로 평생을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며 살았어요.... 우리 이거 기억하실까요?
주님이 우리를 보실 때는 어떨까요?
우리는 주님 마음에 100% 다 맞아서 오늘까지 살아올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부족한 거 많아도 한 두 가지 주님 보시기에 충성된 것이 있으니까 오늘까지 사용하시고 살려두신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사도바울도 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충성된 것이 아니라 충성 되이 여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100% 주님 마음에 맞지 않아도 주님은 우리를 충성 되이 여겨 주신 것은 우리의 한 두가지가 그래도 충성되게 보신 것입니다.
다윗도 바로 아버지가 잘 났던 못났던 내 아버지 나를 낳아주셨던 내 아버지이기에 평생을 이새의 아들 다윗...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한 가지로 감사하고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아내 남편 자녀............다른 것이 없습니다. 재산이 있고 없고 배우고 못배우고 없고요 그냥 나를 낳아주신 내 아버지 나를 선택해준 내 아내 남편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내 자녀들...
이 한가지면 되는 것입니다. 이 한 가지가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 서로를 볼 때 마다 한 가지만 봅시다. 한 가지만 훌륭하면 다 훌륭한 사람입니다.
아흔 아홉 가지 잘해주다가, 한 두 가지 서운하면, 아흔 아홉 가지 다 잊어버리고, 하루아침에 배신하고, 등 돌리고, 원수가 되고, 별별 소리 다 듣는 것이 요즘 현실 아닌가요?
그러면 복 받지 못합니다. 다윗처럼 은혜를 기억하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추수감사절에 한 가지만이라도 감사를 조건이 있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고마운 사람 감사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감사를 찾는 추수감사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내 남편 우리 성도들................... 내 맘에 다 맞지 않아도 한 두가지만 이라도 맞으면 좋은 사람 감사한 사람입니다.
나도 100%가 아니면, 남은 완벽하기를 바라면 안되겠지요?
하나님도 나를 부족해도, 충성 되이 여기신다고 했는데, 우리도 그런 마음이어야 하겠지요?
나를 나 되게 한 부모님, 나를 나 되게 한 목사님, 장로님들, 권사님들...
나를 나 되게 하신 분들이 있기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기 ‘본래성’(originalit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태어날 때부터 대통령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나으시고 어머니 기르시고 선생님....의사
그런데 대통령 되고 나면 교만해서 ‘본래성’(originality)을 잃고 교만하다가 잘못됩니다.
목사, 장로님들... 성공하면...자기 본래성....
다윗은 그랬습니다. 항상 나를 낳아주셨다는 그 한 가지로 아버지를 기억했습니다.
남편이면 잘 나가던 퇴직을 하던 실패를 하던 성공을 하든 남편이라는 한 가지 사실...
아내가 젊었건 늙었건 이쁘건 못생기든 아내라는 그 한가지 사실...
‘그 한 가지를 보고 감사하며 살면
두 번째로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압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나?
1절... ‘나를 높이신 분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를 높이셨습니다.
아버지 이새 때문도 아니고, 그 많은 형들 때문도 아닙니다.
다윗이 왕이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다윗은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형제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나를, ‘세워주시고 높혀 주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압니다.
다윗은 자신의 본래성을 기억하며, 겸손하게, ‘오늘의 다윗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일평생을, 그리고 생애 마지막까지도, 철저한 ‘은혜 의식’에 사로잡혀서 ‘이새의 아들 다윗’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아버지와 형제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나를, ‘세워주시고 높혀 주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압니다.
시103편은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2절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①죄를 사해줬습니다 ②병을 고쳐주셨습니다. ③파멸에서 구해주셨습니다. ④소원을 만족하게 해 주셨습니다. ⑤청춘을 독수리같이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온 모든 동사의 시제가 ‘현재형’입니다.
이는 은혜의 ‘현재성과 계속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도 계속 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잊지 못하는 것이고 너희도 잊지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다윗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게 축복하신 것입니다..
23:4절의 축복
5절의 축복
6절의 축복
감사를 잊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 지금도 잘되시고 나중도 창대하시고 존귀하게 잘되는 인생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