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를 기다림(이사야 40:3-5) ...............2018. 12. 2. 주일낮예배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드’라는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혼자 바다를 항해하다가 배가 파선이 되어서, 파도에 밀려 겨우 겨우 어느 섬에 도달하게 되었답니다.
그러자 그 섬의 원주민들이 그를 발견하고는 ‘추장’ 앞으로 데려 갔습니다.
그 사람은 “아 이제 여기서 내가 저들의 손에 죽게 되는 구나”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은 자기를 그 섬의 왕으로 추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의 자리에 앉아서, 온갖 부귀영화와 온갖 권세를 다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하루는 그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이보시오 나를 왜 이렇게 왕으로 삼아서 나를 섬겨 주시는 것이요”하니까
그들이 하는 말이, “이 섬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왕을 세워서 마음껏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다가, 1년이 지나면 그 왕을 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로 보내서 그곳에서 죽게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선원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어떻게 하면 내가 1년 후에도 잘 살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중 그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신하들에게 명령을 하기를 배를 한 척 만들어서, 그 배에 곡식씨앗과 과일 나무를 많이 싣고 무인도로 가서 잘 심고 가꾸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왕의 명령이니까 그 신하들이 모두들 순종을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년이 지나자 그들은 이 왕을 무인도로 쫓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왕으로 있을 때에, 그 쫓겨날 날을 잘 기다리며 준비를 했던 까닭에 그곳에서 남은여생을 에덴동산처럼 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부터 강림절인데요, 예수님 오심을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했는데요. 주님은 만복의 근원이신 주님이십니다.
모든 복이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이번 성탄에 주님 맞을 준비를 잘 하셔서 만복의 근원되시는 주님이 여러분의 주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산타크로스 할아버지 보다 더 좋은 선물과 복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농사력이 있듯이 교회력에 의하여 강림절입니다.
‘강림절’ 혹은 ‘대림절’ ‘대강절’- 영어로는 ‘advent’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오심, 도착’을 뜻...
이 말의 뜻은 “큰 힘을 가진 분의 도착”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에서는 크리스마스 이전의 네 주일을 ‘강림절’이라 합니다.
‘강림절’은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해서 ‘기쁨으로 기다리며 준비하는 절기’를 말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산타크로스를 기다리는 절기가 되어서 좀 그렀습니다.
옛날에는 그래도 크리스마스가 돌아오면, 츄리를 만들고, 카드를 손수 만들고 그려서 좋아하는 사람, 친구들에게 보내면서 성탄절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면 정말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기다려야 할까요?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지금도 대통령이나 수상들이 한 나라를 방문하게 되면 경호원들이 먼저 가서 사전 준비를 합니다. 경호문제 의전문제 안전문제......
그런데 더더구나 옛날에는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서, 왕의 행렬이 불편하지 않도록 미리 가서 점검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4절에 “골짜기마다 돋우어지고,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이 말씀에 의해서 보면
1. 골짜기는, ‘돋우는 것’입니다. 새)‘모든 계곡을 메우고’
얼마나 큰 길을 내는데, 골짜기는 돋웁니까? 그만큼 예수님은 왕중의 왕이시고 만왕의 왕이십니다.
저는 어릴 때 강원도 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강원도에 고속도로가 난다는 것은 상상을 못했습니다. 전철이 들어온다는 것은 꿈에도....
산이 많아서 어떻게 고속도로가 나고 전철이 납니까?
그런데 여러분 지난 봄에 우리 강원도 가보셨잖아요?
산과 산 사이는 다리를 놓고요, 산은 터널을 뚫어서 우리나라 최장터널이 인제 양양 11km
서울서 속초까지 2시간이 안돼요... 최고대교 인천대교12km
주님을 영접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낮은 골짜기를 메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속의 열등감, 낮은 자존감을 치료해야 합니다.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이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바로 믿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열등감이 우리 마음에 있으면 조금만 서운하면 마음이 상합니다.
나를 무시한 것 같고, 나를 왕따 시키는 것 같습니다.
이런 마음 아예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주인공은 나입니다. “나야 나”... ‘오늘밤의 주인공은 나야 나’
자존감이 없으면 매사에 기쁨이 없습니다, 자신감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를 알아달라고 투정을 합니다.
조그만 일에 상처를 받습니다. 남들이 하는 말에 상처받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런 말씀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이런 말씀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말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
이번 성탄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주님을 기다리는 성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성탄은 내가 주인공인 성탄절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높은 산을 낮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혹시 우리 자신이 가지는 ‘교만함’이나 내가 남보다 낫다는 ‘우월감’은 깎아 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귀하면 남도 귀합니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합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겸손해야 합니다. 남을 귀하게 여겨줄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당시의 가장 가난한 나라 영토도 주권도 없던 이스라엘에 오셨습니다.
그것도 왕으로 오시면서도, 왕궁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베들레헴 마굿간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아시잖아요 막상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 왕들과 고관대작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높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오시기를 기다리는 우리는 마음을 낮추고 겸손하게 기다려야 합니다.
유럽이나 호주 일본 같은데를 가보면 집을 짓는데 돈이 많다고 권력 있다고, 대단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옆집에 대한 배려를 합니다.
색깔이나 그 규모도, 유별나게, 특별히, 더 대단하게 집을 짓지 않습니다.
절대로 옆집보다 더 좋게, 더 높게, 그렇게 과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좀 있어도 있는체, 잘났다고 잘 난체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서로를 배려하고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정신이 내려온 나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겸손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물이 낮은데로 흐르는 것처럼 주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당시 가장 약하고 가난한 유대나라에 베들레헴에 마굿간에 오신 것입니다.
3.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고 험한 곳이 평지가 되는 것입니다.
굽어진 마음, 삐뚤어진 성격, 부정적인 자세를 고쳐야 합니다.
꼬부라진 마음 시각을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고치는 것입닏.
어떻게 대로를 만들어요? 마음의 골짜기를 메우고, 마음의 높은 산을 낮추고, 마음의 굽은 부분을 펴고, 마음의 거친 부분을 부드럽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우리의 ‘회개’입니다. ‘마음의 변화’와 ‘회개’가 망가진 마음의 도로를 재포장하는 놀라운 원천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선포하신 최초의 말씀이 마태4:17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
여기서 ‘회개’란 헬‘metanoia’, ‘메타노이아’ ‘변화, 옮김, 이동’을 의미하는 ‘메타’와 ‘생각하다. 이해하다. 알다.’를 의미하는 ‘노이아’의 합성어로서 ‘생각과 마음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회개는 단순히 지나간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는 정도가 아닙니다.
‘속사람이 근본적으로 새로워지는 변화’입니다.
바로 삶의 방향과 목적이 바르게 바뀌는 행동과 의식의 변화를 말합니다.
참된 ‘metanoia’ ‘회개’는 세속적이면서 자기중심의 이기적인 것이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탕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오듯이, 탕자가 아버지에게 돌아오듯이 그렇게 자기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자기 사명 자기 직분으로 충실한 종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에 주님의 은혜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5절에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말했다 하시는 것입니다.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1. 골짜기는, ‘돋우는 것’입니다.
2. 높은 산을 낮아지는 것입니다.
3.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고 험한 곳이 평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준비하면 복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제단,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교회, 여러분 개인과 가정 사업...
그렇게 강림절을 지내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