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 자의 복 (약5:7-11) 2024년 9월 15일

홈 > 예배 Worship > 주일낮예배
주일낮예배

기다린 자의 복 (약5:7-11) 2024년 9월 15일

최고관리자 0 673

요즘 기다리시죠? 자녀를 기다리고 추석을 기다립니다. 가을의 열매를 기다리시죠? 

이렇게 우리가 추석을 자녀를 설레이며 기다리듯이 

주님 만날 날을 기다리며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면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기뻐하실까?

자녀들이 추석이 와서 빨리 엄마 아빠를 봤으면 하고 그 날을 기다리던 자녀를 우리가 기뻐하듯이..

오늘 본문은 주님 오심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주님 만날 날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밭을 갈다가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은 남고 한 사람은 휴거 되고 한 사람은 남아서 대환란을 겪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맷돌 갈다가...  두 사람이 함께 잠을 자다가 

어떤 사람이 가고 어떤 사람이 남을까요? 주님 만날 날을 기다리던 사람, 주님 만날 준비한 사람은 데려가시고 남은 사람은 7년 환란 가운데 들어가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우리를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참 좋은 믿음은 기다림을 잘하는 믿음이 참 믿음이구나 하는 생각


기다림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기다림은 낭비가 아니라 준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성숙시키시고, 모든 것을 감당할 만한 그릇이 되게 하시는 과정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약속을 믿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나의 인생의 통제권이, 나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기다리라고 하였는데요

1) 소망 중에 주를 기다립시다 7-8절....

2000년 전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의 강림, 재림을 늘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라나타”라고 인사했습니다. “주께서 오십니다”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소망했으면, 인사로 “주님 다시 오십니다” 했을까요? 

초대교인들은 너무나 많은 환난을 당하고 핍박을 받으니까 어서 주님이 오셨으면하는 바램이 있었습니다.


사는 것이 너무 힘이 드니까 “빨리 주님이 오셨으면...” 했습니다. 초대교인들은 예수님 재림이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오늘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너희가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 천년만년 살것같이 마음놓고 사는 것이 죄악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도둑같이 오신다고 하신 것은 도둑이 언제 올지 모르고 오듯이 오신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잠시 있다는 나그네 길, 순례자의 길이고, 우리의 본향은 저 하늘나라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번 주 추석에 자녀들이 기쁨으로 고향으로 돌아오듯이

우리도 우리의 본향으로 갈 날을 사모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천국에 빨리 갔으면 하고 기다리는 성도들이 얼마나 이쁘겠어요?

이 세상 재미에 푹 빠져서 천국 안가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가는 성도가 이쁘겠어요?

객지 나간 자녀들이 객지가 좋다고 고향에 가기 싫다고 하는 자녀가 바른 자녀일까요?

고향에 갈날을 기다리면서 손꼽아 기다리고 준비하는 자녀들이 바른 자녀일까요?   


오늘 우리는 불의한 세상 속에서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듯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가면서 주님을 기다려야 하나요?


2) 서로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9절)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서 계시느니라”

“원망”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성경은 내가 판단하지 말라고 하시죠? 심판자가 문 밖에 서서 계시느니라

내가 판단해서 저 사람 잘못되었고 잘 되었고가 아닙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수요일에 빌2:14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원망’에 해당하는 헬) ‘공귀스모스’는, ‘불만을 속으로 억누르며 ‘투덜거림’

주의 일, 자체에 대해서 ‘의미나 보람’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불만적인 표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즐거움이나 행복’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길 때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향해 나쁜 감정을 품는 것입니다. 

왜죠? 우리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을 합니다 왜 원망을 하죠?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3) 고난 속에서 인내한 자들을 축복하십니다. 11절-

세상이 힘들고 고난이 닥쳐도 주님을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참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믿고 기다릴 때 고난을 축복의 도구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욥은 그 인생에 선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서 그 결말이 행복이고 축복이었습니다. 

지금은 고난이요 고통이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낼 것을 믿는 것입니다. 


모든 열매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기다리고 기다린 결실이 열매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며 세상을 믿음으로 사는 동안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삶의 행복도 주십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썩어질 세상에 빠지지 말고,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도 말고,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가운데 인생에 아름다운 축복의 결실을 맺히며 살다가 

기쁨으로 주님을 만나는 인생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