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편51:10-12) ...... 2020. 5. 24. 주일낮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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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편51:10-12) ...... 2020. 5. 24. 주일낮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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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51편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다윗은 사울 왕이 성령 충만하다가 하나님께서 성령을 거두시자 악신이 임하여서 사울 왕이 비참한 인생의 최후를 맞이 한 것을 몸소 경험한 사람입니다.

 

성령이 떠나신다는 것은 인생의 저주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의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른 것은 몰라도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이 떠나시면 끝입니다.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죽은 자가 됩니다.

 

J.W.회심기념주일입니다. 1738. 5. 24. 282년 전입니다.

J.W.는 어릴 때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대학시절까지, 오직 말씀과 기도로 성결한 삶을 살았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홀리크럽(The Holy Club)을 결성해서 정말 거룩하게 정결하게 말씀과 기도와 전도로 작은 클럽을 조직해서 하나님 말씀만 사모하면서 학교생활과 신앙생활을 잘 하였습니다.

정말 신앙생활을 잘했습니다.

 

그런 것이 기초가 되어 미국 선교사의 사명을 가지고 선교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영국에서 열심히 기도와 말씀과 전도로 훈련되었었는데도 미국 선교 2년 만에 별 성과도 없이 오히려 여러 가지 문제만 가지고 고심하다가 미국에서 선교도 목회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결국 영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영국으로 돌아오는 배가 태풍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테풍을 만나서 배가 파선될지도 모르는 그 절박한 상황 속에서 모라비안이라 성도들의 특별한 신앙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됩니다.

태풍이 불어서, 파도가 치고, 풍랑이 몰아쳐서, 배가 파손될 위험 속에서도, 이 모라비안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무 두려움도 없이, 기쁨과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기도 때문인지, 태풍을 벗어나서, J.W.가 탄 배는 무사히 영국에 도착을 합니다.

이때 J.W.는 이 모라비안 성도들에게서 큰 충격과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국에 도착한 J.W., 1738524일 올더스케잍이라는 곳에서 드리는 모라비안 성도들의 예배를 찾아가게 됩니다.

 

예배를 시작하면서 성경을 낭독하는 사회자의 말씀 1: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이 말씀을 듣는 가운데,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지고,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을 뜨겁게 감지하면서, 입에서는 방언기도가 나오고, 깊이 기도하다보면, 자기가 쓰러져 있기도 하는 놀라운 신비를 체험하면서, 그날 밤에 죄의 생각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1738524J.W.의 일기에 기록)

 

성령을 체험한 후에 J.W.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말씀에도 능력이 있었고, 많은 목회의 결실들이 나타났습니다.

그가 설교하는 곳에는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서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결국이 이 몰려드는 교인들을 조직적으로 양육하기 위해서 작은 소그릅 속회가 조직되었습니다.

그 후에 더 많은 성도들이 모이면서 자연히 (Methodist church) 감리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 감리교회가 성장하여 미국으로 건너가서 발전하고 부흥하여 한국에 감리교회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J.W.는 이런 명언을 남깁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감리교회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감리교인들이, 성령의 능력이나, 감동이나, 우리를 위대하게 만드는, 영성을 잃어버리고도, 만족하게 사는 것입니다

 

J.W.는 자신도 체험했듯이 성령을 경험하고, 성령사역을 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와는 하늘과 땅차이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J.W.는 오직 성령이었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 늘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령받기 전에는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를 때, 예수님께 책망도 많이 들었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 왜 의심하였느냐?” 서로 내가 크다고 자랑할 때는 예수님께 책망을 들었습니다.

시몬 베드로에게는 사탄아 물러가라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는, 제자들은 다 졸고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야바 법정에서 심문받으실 때는, 베드로는 작은 여자 아이 앞에서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는 요한 말고는 다 도망을 갔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과 그 옆구리에 창자국을 만져보지 못하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완전히 변한 것은 어떤 사건 이후였나요?

예수님의 십자가였나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빈 무덤을 보고 난 후였나요?

예수님 승천하시는 것을 보고? 아니죠?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하신 마지막 부탁의 말씀

1:4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그래서 이 말씀을 약 500여명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마가의 다락방으로 가서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정말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렇게 말 안듣고 예수님에게 책망도 받고 예수님 부인하고 도망갔던 이 제자들이 성령을 받으니까 JW처럼 완전히 변화가 된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무능한 자가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우둔한 자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양을 치던 목동이 왕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이와같은 것입니다.

용기 없던 자들이 용기가 생깁니다. 기도하지 못하는 자들이 기도의 문이 열립니다.

전도 못하던 자들이, 주님의 증인이 됩니다. 의심하던 자들이 확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불안하고 무서워하던 자들이 담대해 집니다.

작은 소녀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총독 앞에서도 담대하게 예수님을 전합니다.

사람들을 그렇게 무서워했던 제자들이, “사람의 말을 들음이 옳으냐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옳으냐?”

 

그래서 다윗은 누구보다도 성령의 역사하심을 간절히 원한 것입니다.

오늘 시편 51편은 다윗의 고백이 그런 고백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충신 중에 충신인 우리아 장군이 전쟁에 나간 사이에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고 이것이 탄로 날까봐 그 충신 우리아 장군을 죽게 합니다.

그 사실을 하나님이 다 아시고, 다윗을 괘씸하게 여기시고, 나단 선지자를 심방을 보내셨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선포합니다.

삼하12:10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네 집에 재앙을 일어나겠고,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에게 주어서 네 아내들과 대낮에 동침하게 될 것이라

얼마나 큰 저주인가요?

 

그런데도 다윗은, “아이고 하나님! 우리 집안 망하지 않게 해 주세요그러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정 지켜주세요가 아니라 제 왕위 보좌를 지켜주세요가 아닙니다.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여러분! 가정이 망하고 흥하고 보다 가정의 처자식들이 어떻게 되는 것보다 다윗의 고백은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성령이 안계시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계셔야 가정이 지켜지고 내 믿음을 지킬수가 있고 내가 저주 받지 않고 내가 마귀 사탄을 이길수가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입니다.

 

여러분 예를 들어서 그렀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군사력이 세계 7위입니다. 참 놀랍죠?

그런데 미국이 없으면 북한에서 쳐들어오면, 우리는 핵이 없기에 무력합니다. 한 두방이면 끝입니다.

미국이 있어야 나라도 지키고 가정도 지키고 교회도 지키듯이

성령이 계셔야 되는 것임을 다윗은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계셔야 정한 마음도 창조 정직한 영도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즐거움도 성령이 충만할 때 구원의 즐거움으로 가득찹니다.

자원하는 심령도, 성령충만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그 어떤 것보다도, 성령만은 거두지 마소서하고 눈물로 회개하고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성령님의 임재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성령충만, 여러분 가정도 성령충만, 저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 주시는데 안목사가 성령충만

우리 장로님들 중직들 남, 여선교회와 모든 속회들이 성령충만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럼 성령충만은 무엇일까요?

성령님은, 우리 밖에 어디 계시다가 우리에게 언제 들어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가 성령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우리에게 성령님은 임재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성령의 역사가 미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 자아가 있습니다. 성령님이 계십니다. 또 마귀 사탄의 생각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 역사를 하느냐가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송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말씀 읽고 듣을 때는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십니다. 충만해 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만하고 죄 짓고 남을 미워하고 욕심 부리고 원망불평하고 하면 마귀의 생각이 더 역사가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사울 왕처럼 교만하고 죄 짓고 원망불평 화를 내고 하다보면 성령이 떠나시고 악령이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성령충만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모시고 살기에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의탁을 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언제나 성령 충만 하기를 소원합니다. 말씀 충만하기를 소원합니다. 능력충만 사랑충만..

그래서 항상 예배 때마다 뜨거운 가슴으로 주님이 강권하시는 은혜에 응답하는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183장을 부릅니다.

 

다같이 따라해서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마음 문을 엽니다. 성령님을 환영합니다.

저의 일생 다가도록 성령님께 의탁합니다. 주님이 제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주님이 제 인생의 운전대를 붙잡고 계십니다. 저의 삶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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