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연못의 주인공(요5:1-18) .... 2019. 11. 24. 주일낮예배
이스라엘, 예루살렘,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습니다.
‘양문’은 성전에 제물용으로 사용되던 양들을 사고 팔기 위해서 ‘양을 몰고 출입하는 문’입니다.
‘베데스다’란 이름의 뜻은? ‘자비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3절에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앞에[네모 괄호]표기가 있는데, 그것은 그 부분이 어떤 사본에는 없다는 것을 보면, 그렇게 신빙성이 있지는 않는 것입니다.
하여튼 그런 소문 때문에,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많은 병자들,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중풍)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들은 율법에 의하면,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낙인이 찍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병이 낫기를 간절하게 원했을까요?
그래서 모든 환자들은, 연못가에 누워서, 연못에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직 그들의 관심은, 연못에 물이 움직이는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거기에 있는 모든 병자들은, 연못물이 움직이면, 제일 먼저 들어가려고, 온 신경을 연못물에 집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연못물 가장 가까운 곳에, 누워 있으려고 서로들 자리를 잡으려고 애를 썼을 것입니다.
물이 움직이기만 하면, 남보다 먼저 들어가야 되니까요.... 죽고 사는 문제이니까요...
그러니 얼마나 그 곳에 경쟁심, 이기심이 충만했을까요? 서로 자리 때문에 싸우고 시기 질투도 있구요....
그런데 문제는, 그 병자들은, 연못물이 움직이는 것만 기다리느라구, 그 베데스다 연못에, 그 물을 움직이시는, 예수님이 오신 것은 전혀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 38년 동안이나 병을 앓던, 병자가 있었습니다.
38년 동안이나 병을 앓다보니까, 가족들, 이웃들도, 다 포기하고 누구하나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가족들은 마지막으로, 38년 된 이 병자를, ‘베데스다 연못’까지 갖다 놓고는, 다들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38년 된 병자가 혼자 누워있는데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버리고 갔지만, 다 이 38년 된 이 병자를 다 버리고 갔지만, 예수님께서는 찾아오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가족 친척 친구는 다 버렸지만, 주님은 버리시지 않으시고, 찾아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시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 하시리이다”
여러분! 예수님이 그 많은 병자들을 놔두시고, 이 38년이나 된 병자를 찾으셨을까요?
이 병자는 38년 동안이나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병이 낫기를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8년이나 병을 앓는다는 것이 여러분 보통일인가요? 38년...
여러분!!! 38년이 보통 세월입니까? 000집사님 000와 사신 것 몇 년 되셨죠?
감기 몸살 몇 일만 앓아도 병원 몇 일만 있어도 얼마나 답답하고...
그런데도 “나는 병이 나아서 성전에 들어가리라” “나는 병이 나으리라”
여러분! 이런 간절함, 이런 사모함이 38년이나 있었습니다.
‘병을 고치겠다’는 그 마음이 38년이나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많은 병자 중에,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기적은 쉽게, 누가에게나 체험되는 것이 아닙니다.
병이 걸렸어도 38년을 포기하지 않고 “내가 나으리라”, “내가 깨끗해 지리라” “그래서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리라” 하는 사모하는 사람이 기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오셔서 38년 된 병자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38년이나 되었는데, 포기하지 그러니?” 그러지 않으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여러분 이 병자는, 병이 38년이나 되었는데도 포기를 하지 않습니다. 38년....
가족들도 포기하고, 일가친척도 포기하고, 친구들도 다 돌아간 자기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하십니다.
‘아니 희망을 가진 줄 알았는데, 주님이, 나보고 “낫고자 하느냐?” 하시네...?’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소원’, ‘여러분의 기도의 제목’, ‘비젼...’ ‘꿈...’ 여러분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셉’도 꿈을 포기 하지 않으니 각종 환란도 시련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비젼, 희망, 기도제목을 사모하면, 그것이 내 신앙의 ‘힘’이 됩니다. 그것이 나를 이끕니다.
나를 강하게 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 꿈이 이루어집니다” “소망의 항구”로 들어오게 됩니다.
38년이나 포기하지 않고 열정을 가지고, ‘내가 병을 고치리라’ 하는 병자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7절에 보니까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연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그 병자의 말속에는, ‘야속함’과 ‘원망’과 ‘불평’이 깔려 있습니다. 나의 불행이 남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의 불행은, 남 때문이 아닙니다. 나의 불행이 남편 때문no, 아내 때문 조상때문no no
여러분 나를 연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못 고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안 계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있었으면 내가 먼저 내려 갔을텐데, 아버지만 옆에 있었으면 내가 먼저 내려갈 수 있었을텐데..
아닙니다. 주님이 안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불행은 주님이 안계시고 기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서 불행한 것입니다. 주 예수와 동행하면 초막이나 궁궐이나 하늘나라...
병이 걸린 지 38년이 되었어도, 예수님 만나니까 해결되었잖아요...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하면 안되죠? ‘나의 불행은 누구 때문이다’ 주 예수와 동행하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 말씀은 권세와 권능의 말씀이십니다. “빛이 있으라” “일어나 빛을 발하라”
창조의 음성이요, 소성케 하시는 음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 이 모두가 이 환자에게는 순종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안수도 안 해 주시고, 기도도 안해 주셨는데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그러나 순종했습니다.
일어나려고 해보니까, 일어나 집니다. 힘이 납니다. 어? 나 이런 거 안됐는데......
순종해 보니까 순종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일어나지네요...일어나서 자리를 들었습니다. 걷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베데스다’ 연못은, 우리 내리교회입니다.
예수님은 마18:20절에 말씀하시기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믿으시죠? 이 말씀을 안 믿는 분들은 교회 나오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교회에 주님이 임재하시지 않는데 교회 나오시면 뭐합니까?
내리교회에 주님이 임재하셨으면 우리는 교회에 오셔서 누구를 찾아야 하나요? 누구를 만나야 하나요? 누구의 음성을 들어야 하나요?
두말할 것 없이, 주님을 찾아야 하고, 주님을 만나야 하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리교회에 오게 하신 이유는, 주님을 만나러 오게 하신 것입니다.
네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하고 또 그 과실이 항상 있께 하려 함이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심으로..
그러면 주님이 붙잡아 주시고, 주님이 길을 열어 주시고, 주님이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 제목 마음에 바라는 것들을 주님이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 가정의 소원이 있느냐?’
예수님께서 베데스다에 가셨는데도, 다른 많은 환자들은, 연못의 물이 동하는 것에만 신경을 썼지, 치유 하시고, 소성케 하시는 예수님에게는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교회 오셔서 은혜 받는데 집중해야...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절대로 우리의 관심이, 다른데 있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누가 안왔나?’ ‘어이구? 아무개 파마 했네...’ ‘찬양대에 누가 빠졌네’ ‘목사님 머리 깎으셨네’
‘예배 끝나고 온수리 장에나 가야지’ ‘예배 끝나고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no no no
여러분! 마귀 사탄이 교회 오는 것을 못 막아서 우리가 교회 오셨으면 마귀는 다음 작전이 뭘까요?
은혜 못 받게 합니다. 왔다가나 마나 하게 합니다. 말씀 못 듣게., 산만하게, 잠이오게 만듭니다.
교회에 오시면, 우리는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설교시간에 나에게 무슨 말씀을 주시려나?’ ‘장로님 기도시간에 나도 사모하는 마음으로 아멘 아멘’
‘찬양대의 찬양을 들으면서 아멘 아멘....’ 이렇게 주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설교시간에, 주님의 음성으로 감동이 되어야 합니다. 설교를 잘 한다 못 한다 평가no
장로님들의 대표기도 시간에도, 기도가 길다 짧다.. 준비를 했다. 안했다...
찬양대의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찬양대가 연습을 했느니 안했느니 평가no no..
그리고 예배시간에 은혜를 먼저 받고, 봉사하는 것이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찬 하는 것 때문에 예배에 집중 못하고,.. 찬양대 때문에.. 반주 때문에.. 방송실 .. 교사..
주님을 만나야 할 시간에,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시간에, 다른 것이 자꾸 우리 마음을 흔들어놓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에 계시는데도, 연못물이 움직이는 것만 기다리는 병자들처럼 말입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주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러므로 베데스다 연못에 주인공이 예수님이셨듯이 교회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십니다.
유럽의 프랑스에서 ‘태양의 왕’ 이라고 불리는 루이 14세 황제가 있었습니다. 실화입니다.
이 황제는 주일이면, 가족들과 왕족들을 거느리고, 언제나 ‘프넬론’ 대주교가 시무하는 교회에 출석...
황제가 출석을 하니까, 그 교회는, 항상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교인들로 꽉 찼습니다.
어느 날 대주교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연 우리 교인들이, 이렇게 교회를 잘 나오는 것이, 정말 하나님을 만나러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황제를 만나러 나오는 것인지를 시험해 볼 생각으로, 황제가 퇴장을 한 다음에, 이렇게 광고를 했습니다.
“여러분! 다음 주일에는, 폐하께서 다른 일정이 있으셔서, 다음 주일예배에는 나오지 못하십니다” 광고를 했습니다..
다음 주일.. 아니나 다를까 황제와 가족 친척들은, 교회에 다 왔는데, 교인들은 별로, 거의 많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황제가 이상하니까 물었습니다. “아니 오늘 왜 교인들이 이렇게 많이 안왔나요?” 대주교가 대답을 합니다.
“제가 우리 교인들이, 교회에, 주님을 만나러 오는지, 아니면, 폐하를 뵈러 오는 지를 실험해 보려고, 지난 주일에 광고를 하기를, ‘다음 주일에는 페하께서 주일예배에 못 오십니다’ 했더니,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안왔네요. 교인들은 지금까지, 주님을 만나러 오는 것이 아니라, 폐하를 뵈러 왔나 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목적은, 주님을 만나러 나오는 것입니다.
찬양대 하러? 반주하러? 주방에 봉사하러? 그것은 모든 예배에 은혜를 받고, 난 후 헌신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우선이 되어야 하고, 예배시간에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음성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이 음성을 들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창조가 일어나고, 치유가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 중에 이 주님의 음성으로 감동되어야 합니다. 이 음성이 나를 감동해야 합니다.
이 모든 예배 순서 순서에 주님의 감동이 있어야 됩니다.
장로님이 기도하실 때 주님의 감동 주님의 음성.... 찬양대가 찬양을 할 때에 주님의 감동 주님의 음성....
재무 회계 권사님이 헌금을 들고 나오셔서 봉헌할 때, 소년의 5병 2어가 주님의 손으로 헌신되어지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다른 이로써 구원이 없습니다. 다른 것이 아닌 오직 예수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에서도 오직 예수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병자들은 이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소책자가 있습니다. 이 책에 ‘마리아 브린튼’이란 여성의 간증이 있습니다.
‘마리아 브린튼’이라는 여인은, 남편과 이혼을 한 후에, 아주 가난하고 비참하게 세 아이와 함께 작은 아파트에서 살면서, 전 남편이 보내주는 약간의 생활비와 ‘도넛츠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어렵게, 근근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전 남편이 양육비를 보내주지를 않고, 도넛츠 가게도 잘 안돼서 가게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과금’도 못 내고, 영하로 내려가는 추위에서, 전기도 끊겨서, 촛불을 켜고, 담요를 뒤집어쓰고 차가운 스프와 샌드위치로 몇 달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너무 어려워서 자살까지 하려다가....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만약에 주님 살아 계신다면, 제게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이 지옥 같은 인생에서 저희를 벗어나게 하옵소서”얼마나 간절히 기도를 했냐하면, 하체가 막 마비가 올 때까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그 다음날 주일날 일어났습니다.
딸이 욕실에 갔다가 소리를 치면서 엄마를 부릅니다. “엄마, 저 욕실 천장에 예수님의 초상화가 있어요.”
엄마가 뛰어가 보니까, 욕실에 켜놓은 석유난로에서 ‘그을음’이 올라가서, 천장을 얼룩이 지게 했는데, 그 ‘그을음’이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려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난 밤 자기가 하체가 마비될 정도로 기도하며 “주님이 살아 계시다면 주님의 얼굴을 보여 주시고 저를 이 지옥같은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하고 기도를 한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초상화를 보는 순간에 그 여인은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그 날이 주일이라 이 여인이 교회를 갔습니다. 여러분! 그 예배가 얼마나 은혜가 되었겠어요?
감격 속에, 은혜 가운데 예배를 드리고 집에 오니까, 좋은 일이 금방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담당 변호사가 전화가 왔습니다. “남편이 양육비를 보내왔다”고...
그리고 얼마 후에는, 월급이 아주 꽤 되는 좋은 직장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석유난로에서 나오는 ‘그을음’으로 그려진 ‘주님의 형상’을 보고도 은혜가 충만하니까 복이 온 것입니다.
하여튼, 영혼이 잘되니까 범사가 잘 되는 것입니다.
내가 고침을 받으리라 그 결심이 38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 열정을 가질 때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기도도 하되, 간절히, 꾸준히 하셔야 합니다. 38년 기도.....
그리고 하체가 마비될 정도로, 간절히 열심히 기도할 때 주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를 열심히 꾸준히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시면 주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결론-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사도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뭘까요?
‘베데스다’라는 교회에 모인 성도들의 관심, 그 관심이 중요한 데요, 그 관심은 ‘연못의 물이 동하는 것’이 아니라, 연못을 찾아오시는 예수님이 귀중하다는 것을 사도요한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인공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 내리교회에 오셔서, 주님을 만나시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주님은 이곳에 임재하십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황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대통령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주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저 이스라엘, 베데스다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저 하늘 보좌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으로 오셔서, 오늘도 우리 내리교회에서 사모하는 영혼을 찾아오십니다.
주님이 임재하신 이 예배에, 우리의 관심은, 오직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를 만나러 성령으로 오셨는데, 성령님을 그냥 헛되고 왔다가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사모하셔서 주님이 우리에게 임재 하시고, 우리도 주님의 영광을 뵙고, 치유될 분은 치유되시고 위로 받으실 분은, 위로 받으시고, 새 힘 얻으실 분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예배드릴 때 마다 주님을 바라보시고 주님을 만나셔서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