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0-13) 2024년 6월 23일 주일낮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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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0-13) 2024년 6월 23일 주일낮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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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우리나라가 당면한 사회적 문제 자연주의 기독교적인 문화... 하나님은 안계신다하는 사람들 기독교인들.. 


우리나라 또 하나의 충돌은, 공산주의 자들도 우리 동포니 너그러이 하나 되어 우리끼리 통일을 이루자.... 김구...

공산당은 믿을 수 없으니 우리나라가 힘을 길러서 자주 국방을 이루어야 한다는 세력.... 이승만


모택동을 존경한다는 대통령 우리나라 대통령이었습니다. 모택동 장개석 총통과 싸워 중국을 공산화 시킨 사람

“모” 6.25 때 다 된 통일을 중공군을 수차례에 걸쳐 무려 240만명 이상을 6.25 전쟁에 보내 한반도 통일을 방해

1976년까지 종신 장기 집권하며 수많은 민주세력들을 학살한 전범 이승만 박정희 – 장기집권 독재... 모 북한


1945년 8월 15일 우리가 광복을 맞자 38선 이북에는 소련군이 진주하고, 공산 정권을 세워 민족 통일을 방해하면서 침략의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북쪽에 진주한 소련군은, 북한의 모든 산업 시설들을 뜯어가기에 바빴습니다.

남쪽에 미국군은, 먹을 거 입을 거 가져다 주고, 고아원 지어주고 학교 지어주고..불쌍한 집 자녀 데려다 유학


그러다가 북한 김일성은 1950년 6월 7일에 방송을 통해서 1950년 8. 15일 광복 5주년 기념해서 “남북 통일 최고 입법 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통일 회담을 열자고 해 놓고는 자기들은 계획대로 남침을 착착 진행했습니다. 

이것이 저들 공산주의자들이 지금까지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결국 1950년 6. 25. 주일 새벽 4시 남침을 감행했습니다.

우리 국군은 휴가와 외출로 전선은 텅텅 빈 상태였습니다. 


이제 와서 보면, 저들의 저의는 결국 6월 25일 새벽 4시 30분(일요일) 일제히 38선을 넘어 공격을 개시함으로 무력 통일하려고 했던 것이 드러났습니다. 한편으로는 평화적으로 회담을 하자고 하면서 본의는 무력 통일이었습니다.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을 당한 우리 국군은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소련 탱크를 앞세워 내려오는 적군을 소총으로 막을 길 없어서 육탄 용사들이 몸으로 막았습니다.

불과 3일 만에 서울을 비우고 정부가 대전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이때 우리 민족끼리 이승만 대통령의 도망설

한강 다리를 끊어 놓고 도망갔다 하면서 보여주는 사진1.

실제 사진 2.

 

미국은 국제 연합 안전 보장 이사회를 열어 한국 문제를 건의하여 국제 연합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나라들은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네델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에티오피아,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콜롬비아, 튀르키예, 그리스. 16개국..


오늘도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고는 있을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6월 27일 새벽 2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속에서 신성모 국방장관, 이기붕 서울시장, 조병옥 박사 등이 경무대(당시의 청와대)를 찾아 “각하 사태가 급박합니다. 빨리 피하셔야 겠습니다”라고 권했고, 

이승만 대통령은 “안 돼! 서울을 사수해! 나는 떠날 수 없어!”라고 외치며 서울 사수 의지를 역설했다.


적의 탱크가 청량리까지 들어왔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이승만은 그때서야 참모들의 뜻에 따른다. 

당시 참모들의 보고는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통령이 서울을 사수하다 북한군에게 생포되거나 죽을 수도 있는 ‘전시 대통령 유고(有故)’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피신 결정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대통령 피신 바로 다음날인 6월 28일 북한군은 서울을 점령했고, 서울에 남아있던 정부 요인과 주요 인사들, 그들의 가족까지 납치, 고문, 살해했다.


대전에서 대구 대구에서 부산까지 정부는 밀려가야 했습니다.

UN군이 오기도 전에 전쟁은 끝날지도 모르는 절박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공산당으로의 적화 통일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럴 때 논란의 대상이 된, 이승만 대통령 일본으로 망명정부 세움


1950년 8월 14일, 무초(John Joseph Muccio) 주한 미국대사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정부를 제주도를 옮길 것을 건의하자, 이승만 대통령이 허리에 차고 있던 모젤 권총을 꺼내 들고 다음과 같이 외쳤던 말.

 

“이 총으로 공산당이 내 앞까지 왔을 때 내 처를 쏘고, 적을 죽이고 나머지 한 알로 나를 쏠 것이오. 우리는 정부를 한반도 밖으로 옮길 생각이 없소. 모두 총궐기하여 싸울 것이오. 결코 도망가지 않겠소.”


일부에서는 6.25 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한강 다리를 끊고 도망쳤다”, “일본으로의 망명을 타진 했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런승만’, ‘친일파’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한국을 사수하고자 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발언, 행적과는 반대되는 주장입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밀리고 있던 1951년 초, 미국은 일본군을 유엔군에 편입시켜 한국에 파견할 것을 검토했다. 이 사실을 안 이승만은 분노했습니다. 

그는 “만약 일본군이 참전하면 일본군부터 격퇴한 다음 공산군과 싸우겠다”고 말했고, 미국은 일본군 참전 계획을 접어야만 했다.


여러분! 나라를 버리고 도망을 한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의 김일성이었습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전세는 완전히 역전됐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10월 1일에는 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돌파했다는 보고를 받은 김일성은, 10월 3일 아들 김정일과 일가친척들을 만주 심양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김일성 자신은 국군이 평양에 입성하기 일주일 전인 10월 12일 평양을 떠나 중국으로 도망갑니.


김일성은 도망가며 연설한 내용 ‘조국이 위기에 처하여 전 인민에게 고함’이라는 녹음 연설을 방송합니다. 

연설 주요 내용은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흘리면서 싸우라”, “어떤 일이 있어도 현물세를 바치라”였습니다.


김일성은 도망치는 와중에도 북한 주민의 피와 땀을 착취했던 것이다. 

김일성이 평양에서 도망갈 때 탔던 차는 소련제 고급 승용차 ‘볼가’였습니다. 

김일성은 도주 중에 상황이 급박해지자않자 청천강변에 자동차를 버리고 도망했는데, 이 차는 나중에 국군에게 노획됩니다.


김일성은 압록강을 건너 만주의 통화로 도망했고, 1951년 1월까지 강계에 중앙당 연락소를 설치하고 주요기관은 만주로 옮깁니다. 

김일성이야말로 자기와 가족만 살겠다고 도망한 뒤 중국에 망명정부를 차린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과 김일성의 행보는 이렇게 대비가 됩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이 함락되기 하루 전인 6월 27일까지 서울을 사수하며 전쟁을 지휘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서울을 떠날 때 탔던 교통편은 차창은 깨져 있고 좌석 스프링이 튀어나와 있을 정도로 낡은 2칸짜리 3등 열차였습니다. 그는 어떤 위기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조국을 사수했습니다.


드디어 수도 서울이 함락 된지 3개월 만에 맥아더 사령관이 지휘하는 UN군과 국군은 인천 상륙 작전(9월 15일)에 성공함으로써 서울을 빼앗긴 지 3개월 만인 9월 28일에 서울을 되찾았습니다.

그 후 모든 전선에서 유엔군과 국군은 파죽지세로 북진을 거듭하여 이번에는 거꾸로 평양이 함락되고 두만강, 혜산진까지 진격하여 곧 통일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기치 않았던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51년 1.4 후퇴입니다.

국토 통일을 눈앞에 두었을 때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여 인해 전술로 반격해 왔습니다.

그때 전투야말로 얼마나 처절했는지 모릅니다.

결국 38선 부근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3년을 끌어오다가 서로 지친 상태에서 좀 쉬었다 하자고 휴전 협정을 체결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현실에서 겪었던 과거 54년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이유

인민군이 사흘간 서울에 머문 점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에 소련대표가 불참한 점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한 점


전쟁 시작과 비슷한 형태로 전쟁이 휴전이 된 점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시험이요 책망입니다.


6.25와 같은 전쟁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절실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무력의 힘을 무기로 삼고, 동족에게 총 뿌리를 겨누는 일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공산주의는 이 땅에서 절대로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6.25 전쟁이 사상의 대립이요 사상전이었습니다. 부모형제친구도 없는 것이 공산당입니다. 믿으면 안됩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공산주의는 악(惡)의 영입니다.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주관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 사상은 하나님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칼 막스는 “신은 필요 때문에 고안된 정신적 허구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또 그는 공산당 선언문에서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다같이 단결하고 자본가의 재산을 빼앗아 공동소유로 만들자”

요즘도 이런 말하면 서민층의 사람들은 속이 시원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급진적인 정강 정책을 내 놓고 부유세를 신설하겠다는 정당에게 표를 많이 준 것 아니겠습니까?


저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따르지 않으면 곧 바로 반동으로 처단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주장을 비판하면 모두 민족 반역자가 됩니다.

그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평화적 통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한반도의 통일은 마음을 주장하는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신앙인들이 바로 서지 못하면 하나님은 징계한다는 교훈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공동체입니다. 영적으로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몸이 서로 하나 되지 못하고 싸우면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가만두지 않습니다. 그것이 이미 6.25때 입증

8.15 해방 후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서로 미워하고 질시하고 싸웠습니다.

싸움의 원인은 누가 더 하나님을 바로 믿었느냐? 하는 것으로 싸웠습니다.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


6.25가 나던 두 달 전에 대구에서 장로교 총회가 갈라져 서로 따로 합하지 못하더니, 곧바로 6.25가 터졌습니다.

이것이 어찌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서로 갈라질 때마다 전쟁으로 저들을 징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입니다.

악의 영들을 대항하여 싸울 유일한 전초기지 이기도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를 박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와 공산주의 사상은 서로 용납할 수 없는 적대 관계입니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영적 싸움입니다. <악령>과 <성령>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자유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나라들과 유대를 함께 하는 것은, 저들이 완전무결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저들이 기독교 신앙을 기초로 한 나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미국입니다. 미국이 우리에게 잘못하는 일 많습니다. 교만하게 구는 일들도 많습니다.

자존심 상하게 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따돌리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치의 이념으로 삼는 나라입니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는 먼저 하나님 앞에 회개할 줄 아는 나라입니다.

지난번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전 국가적으로 하나님 앞에 참회의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을 우방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니 또한 미국이 강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미국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이 나라 고관들의 자녀들 중에 미국에 보내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됩니까?

왜 싫은 나라라고 하면서 자기 자녀들은 거기에 보내 교육을 받게 합니까?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나라 사랑은 근본적으로 달라야 합니다.

6.25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으로 취급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다시 6.25가 재발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습니까?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이제 전쟁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 한반도의 전쟁을 일으킬 가능이 크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물러가려면 가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겸손한 마음으로 이 땅에 하나님이 없다는 사상이 지배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본분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전쟁을 모르는 후세들에게 전쟁의 비참함을 일깨워, 아직도 자기들 생각대로 따르지 않으면 불바다 만들겠다는 블레셋과 같은 무리들 앞에 벌벌 떨고만 있을 것이 아닙니다.

용감한 다윗과 같은 신앙의 젊은이들이 교회 안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6.25가 준 교훈을 되새겨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크리스천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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