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당할 때에 위로하시는 하나님(고후1:1-11)

홈 > 예배 Worship > 주일낮예배
주일낮예배

고난을 당할 때에 위로하시는 하나님(고후1:1-11)

최고관리자 0 171

사도 바울이 두 번째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가 고린도후서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자기가 당한 고난을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고백을 합니다. 

고난과 환란을 “위와 아래에서 내리누르는 압착” 아주 견디기 힘들 정도의 극심한 고난으로 고백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이 그렇죠?.. 목회생활도 그렇구요... 


본문 1:8-9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며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죽는게 이런 것이구나”


사도바울이, 정말 죽을 것같은 고난을 말합니다..... 정말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고난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지?” “나 정말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 이런 생각이들 정도의 고난입니다.


그런데요....사도바울은 그런 ‘환란과 고통’을 받으면서도,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시작은 “찬송하리로다”입니다. 

1:3절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 이시며” 

바울은 환란을 겪으며,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꼈으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합니다.

그리고 3절에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하지요?. “자비의 아버지, 위로의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사도바울은 왜 그런 환란과 고난을 만나도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하고 자비의 아버지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할까요?


1.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환난 중에 늘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4-5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바울은 너무 힘든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환난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살 소망까지 끊어질 정도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환난 중에 위로를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환난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자비의 아버지,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5절....

우리가 당하는 환난의 고통도 넘치지만,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은혜도 넘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환난과 고난이 없는 삶을 소망합니다. 

그런데 환난이 없으면, 주님의 위로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의 영광도 없는 것입니다.

“고난없는 영광은 없다”


믿음이 약한 분들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지 않아도 좋으니까, 환난이나 없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지 못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환란과 고난 중에서 우리에게 성숙하게 하시고 결실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춧모를 비닐하우스에 키우시지 왜 조금 있으면 밖에내다 심을까요?

비닐하우스에는 비바람도 없고 춥지도 않고 병충해도 없을텐데 왜 밖에 내다 심으세요?


고추가 밖에다 밭에다 심어놓으면 비바람도 불고 햇볕도 따갑고 이슬도 맞고 하지만 그래야 고추가 맺히고 자라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난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고난 주간없는 부활주일은 없습니다.


오늘 4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환난에서 바로 건져 주신다”라고 하지 않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란 중에서 의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환란 중에서 정신차리고....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는 두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위로” - “파라클레시스”

1.“하나님의 위로”는, 편하게 해주고, 달래서 위로해 주는 정도가 아니라,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까지 하십니다.

2.“곁에서 부른다” “우리 곁에서 우리를 계속 응원을 해주는 것입니다.” 응원- 선수 이름을 부르면서 힘내라고 “화이팅” 


우리 곁에서 우리를 계속 격려하며 응원하며 내 이름을 불러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위로” - 헬)“파라클레시스” 

“보혜사 성령님” - 헬)“파라클레토스”

늘 곁에서 우리를 응원해 주시는 분, 늘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바로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2. 둘째 환난 중에 신비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기에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하는 것입니다. 

고후1:9-10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사도 바울은 사형 선고를 받은 것과 같은 환난 중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슨 하나님의 뜻?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기를 원하시는 뜻을 알게 하셨습니다. 

사실 바울은 잘 난 사람입니다. 지식과 명예 권세가 있었기 때문에 교만하기 아주 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를 의지하지 말고, 나를 의지해라” 하시는 것을 환란 중에서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너는 아무 것도 아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하는 것이다 나를 의지하여라”

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가진 지식, 재능, 물질, 명예, 권세 아무 것도 아니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죽을 것같은환난을 겪으면서 그것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에게 환난은,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무능한 지를 가르쳐 줍니다. 

‘나는 스스로 인생을 성공할 수 없다’ “나는 나 스스로 행복할 수 없다” “나는 나 스스로 평안할 수 없다”를 깨닫는 것


여러분 내가 뭘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십니다. 

나에게 열쇠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열쇠를 가지고 우리가 운전대no 하나님께서 운전대를 잡고 계십니다.   


그래서 10절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건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육신과 마음의 질병에서 우리를 건지십니다. 하나님은 경제적, 영적인 가난에서 우리를 건지십니다. 

하나님은 죄와 죽음의 공포로부터 우리를 건지십니다. 


우리나라를 이전에도 건지셨고, 지금도 건지고 계시고, 앞으로도 건지실 것입니다. 믿읍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살리는 하나님,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그 하나님 만을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3. 환난 중에 있는 우리를 위로하신 이유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위로를 우리도 그런 위로를 하라는 것입니다.

고후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바울은 자기가 환난 중에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 환난 중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직접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1: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환난 가운데서 가장 연약할 때,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를 충만히 받고, 우리 또한 환난 가운데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환난을 홀로 견디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고난 당한 성도를 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또 지체된 우리가 서로 서로를 돕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고난 중에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은, 환난 중에 있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를 원하십니다. 

롬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아멘! 


여러분, 우리의 말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길 소원합니다. 우리의 표정이, 우리 서로에게 위로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인사가 우리 서로에게 위로가 되길 소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위로의 마음이 되길 소원합니다. 


1: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서로 서로 환난 중에 있는 모두를 위하여 기도로 도와야 합니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하나님의 사람들은, 서로 서로 중보기도를 해주는 사람들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바울을 직접 도우러 올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이 한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통해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난 가운데서도, 결코 외롭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가 힘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를 위해서 좀 기도해 주십시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줘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 하셔서,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고, 여러분은 그 기도 응답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하고 쓴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세히 모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누군가에게 우리를 위한 기도를 시키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환난 중에 있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면, 여러분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그 하나님을 반드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도로 말미암아, 환난을 극복하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누군가의 중보자가 되게 하십니다. 

여러분의 기도로, 많은 사람들이 축복을.. 위롤를 기적을 형통함을 승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왜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고 했을까요?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환난 중에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환난 중에 신비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기에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십니다. 

셋째, 환난 중에 우리는 서로 서로 위로해 주고 기도주고 응원해 주기를 바랍니다... 


바라고 원하기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깊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로 하나님을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찬송 하실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