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쓰시겠다고 하라(마21:1-9) 2025년 4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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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쓰시겠다고 하라(마21:1-9) 2025년 4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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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사건은 이미 500- 600여년 전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에, 메시야가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시는 광경이 예언되어 기록하였습니다.

슥9:9절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은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두 제자에게 저 건너편 마을에 가면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매여 있을 것이니 풀어서 끌고 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때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고 했습니다. 


나귀주인이 나귀를 매어 놓았지만 그 나귀 주인이 진짜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 주인이시죠... 청지기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 이 세상의 모든 것의 진짜 주인은 우리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 주인이십니다. 

나의 생명이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여러분 앞날이 주의 손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심야 기도회에서 말씀전했죠?


여러분의 앞날이 의사에 손에....no  원수의 손, 마귀 사탄의 손에 no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라고 하지 않고, ‘주께서’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모든 것의 주인은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주’라는 말은, ‘주인’이라는 말이고, ‘창조주’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창조주이시고 온 세상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도 주님의 손에 들려져서 주님께서 쓰시는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요 행복한 인생인 것입니다.


여러분!!!! 주인이 누구인 것을 알고 사는 것과 마치 내가 주인인 것처럼 사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대상 29:14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우리는 단지 주님이 맡기신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도 주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전5:15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의 생명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자살을 하는 것은, 내가 내 목숨을 끊는 것이라는 생각에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내 목숨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죽이는 것도 살인입니다. 큰 죄입니다.


우리나라 2023년 1년 자살 인구가 13,978 –하루 38명..  40년 전  1983년  3471- 하루9.5 화재로


여러분!!! 사람은 살기 힘들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말세에 마귀 사탄이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 누구신지 분명히 알고 주님 주님 하면서 믿어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 no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주신 이 생명, 주님이 주신 이 삶을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도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소중히 여기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 가운데, 오직 주님의 뜻대로 행케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의식주 생활은 물론 물 한 모금 마실 때도 주님의 것임을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 되고, 하나님이 주신 우주 공간에서 마음껏 공기를 마시며 살게 해주신 것도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 주님께 쓰임 받는 것이 축복이요 행복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쓰신 나귀는 많은 나귀들 중에 선택받은 나귀였습니다. 

주님께서 선택하시는 순간, 주님께 쓰임 받는 순간, 그 나귀는 존귀한 나귀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손님들에게 예를 가장 잘 갖추는 것이 대야에 발을 씻으라고 물을 떠다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예우는, 주인이 팔을 걷고 손님의 발을 씻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최고의 예우는, 자기의 겉옷을 벗어서 오신 길에 옷을 쫘악 깔아주는 것입니다. 


나귀가 홀로 있을 때는, 짐이나 지고.... 채찍도 맞는 천한 나귀지만.......... 네팔 히말리야 등산객 여행객 짐이나 지고..


그런데 이 선택 받은 나귀는 예수님을 태우니까 그 때부터 먼지 나는 길, 험한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깔아놓은 겉옷을 밟고 걷게 되었습니다. 

선택 받은 나귀는 예수님 때문에 그런 길을 걷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는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나귀가 예수님 때문에 그런 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 때문에 영광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복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순간부터 영광의 길, 승리의 길, 축복의 길, 행복의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입니다. 


셋째, 그러므로 주께 쓰임 받는 자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끝까지 충성을 다하며 살아야 됩니다.

나귀가 먼지 나는 길을 걷지 아니하고 겉옷과 나뭇가지가 깔린 길을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을 모시고 가기 때문입니다.

주님 덕분임을 알고 늘 감사하며 충성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살아야 합니다. 


만약에 이 나귀에 예수님이 타시지 아니했으면 누가 길에다 그 귀한 옷을 깔아주겠어요?

예수님 때문에 그렇잖아요...예수님이 안타셨으면 이 나귀는 보잘것없고 천한, 저 시골에 나귀에 불과합니다.


행12: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쓰임 받은 우리는 이 생명 다할 때까지 예수님을 모시고 살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절대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바울처럼, 주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면서 온 세상 만민들 앞에 주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태운 나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까지 끝까지 충성했습니다. 

힘들다고 중간에 예수님을 내려놓고 딴 길로 갔다는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까지 끝까지 사역을 잘 감당했습니다. 


짐승이지만 예수님을 모시고 끝까지 갈 길을 다 갔습니다. 

주께 쓰임 받은 우리는 무엇을 맡았든지 맡은 일에 끝까지 충성을 다해야 됩니다(고전 4:2).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도 자기 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삼상6: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첫째, 이 세상의 모든 것의 진짜 주인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둘째, 주님께 쓰임 받는 것이 축복이,요 행복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므로 주께 쓰임 받는 자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끝까지 충성을 다하며 살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주님의 것임을 알고 감사하면서, 주님께 쓰임 받는 것이 곧 축복임을 깨달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충성을 다하여 주님께 더욱 크게 쓰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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